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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해석이 환류하는 공간, 박소라의 <Brain & Soul>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Artist View of Science, AVS)’을 엮어낸 전시 《데이터 정원》(2022)은 ‘데이터’를 인식하고 분류, 분석하는 체계가 서로 다른 예술가와 과학자 간의 협업을 다양한 맥락에서 구성한 전시이다. 그 중 박소라 작가의 <Brain & Soul>은 관람객이 자유롭게 위치와 모양을 변경할 수 있는 구조물로 제작된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이 작품을 통해 뇌과학자 고혜영 박사가 바라보는 뇌에 대한 시선과 연구에서 발현된 작가의 확장적 해석을 표현하였다. 고혜영 박사는 “인류는 공통된 뇌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학습과 경험을 하게되는데, 이때 형성된 시냅스 연결 패턴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인 개인성(individuality)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 개인성을 영혼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언급하였고, 이 대화는 박소라 작가가 <Brain & Soul>을 구상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과학에 대한 예술가의 실험

전시장에 들어서면, 곡선으로 된 파란색 파이프와 진회색 판넬, 그리고 오렌지색 베어링과 바퀴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눈에 띈다. 구조물에 층층이 위치하고 있는 판넬에는 가상공간의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치 가상공간을 들여다 보는 듯한 돋보기처럼 보인다. 성인의 키 높이 정도의 이 구조물은 그 모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퀴가 달려있어서 관람객이 자유롭게 변형하고 움직일 수 있다. 구조물을 동그랗게 만들기도 하고, 일자로 쭉 펴기도 하면서 전시 공간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다 보면 엄숙하고 무겁기만 했던 전시장이 놀이적 행위의 공간으로 변한다. 박소라의 이번 작품에서는 뇌의 시냅스 패턴에서 발현되는 개인성이 공간을 대하는 행위로,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경험과 해석이 개인의 시냅스 패턴 형성의 일부가 된다는 ‘환류’에 대한 상상이 엿보인다.



감각과 인지의 공간 설계

박소라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구상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관람객이 카지노, 쇼윈도, 게임 공간과 같이 전시장에서 뜻밖의 공간을 맞닥들이면서 경험하는 생경한 공간의 느낌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21년 작 <Double or Nothing>에서는 ‘카지노’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 특성[1] 을 차용하여 관람객에게 일시적인 몰입감을 제공한다. 작품은 하늘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는 곡선 형태의 차양막 구조물이 있고, 그 안에는 구멍이 뚫린 카지노 테이블과 모터에 의해 움직이는 갈퀴가 설치되어 있다. 이 갈퀴는 테이블 위에 있는 카지노 칩을 구멍 안으로 떨어 뜨리기 위해 서서히 이동하는데, 이 장면은 관람객에게 순간적인 몰입감을 자아낸다. 박소라의 공간에는, 관람객이 들어서는 순간에 생성되는 감각과 인지의 과정이 경험으로 남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행위와 경험의 범위 설정 

<Brain & Soul>은 물리적인 현실의 공간뿐만 아니라, 가상의 디지털 공간까지의 연결과 확장을 도모한다. 여기서 작가는 “현실을 디지털 공간에서 재현하기”보다는, “디지털 공간을 현실로 소환하기"라는 작가만의 전략을 선택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x,y,z축, 그리드 이미지를 작품의 조형 요소로 활용했다.[2] 가상의 디지털 세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시선은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물리적인 공간에서 사물로 재현된다. 흔히, 디지털 공간은 컴퓨터 연산과 네트워크를 통해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을 현실에서 경험하는 범위는 제공되는 입출력 장치(Input/Output Device)에 따라 결정되고, 한정적이다. 박소라 작가의 “디지털 공간을 현실로 소환하기"는 무한하다고 여겨지는 디지털 공간을 디바이스에 의해 유한하게 경험한 행위의 범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관람객은 작품을 마음껏 변형하고 이동할 수 있으나, 이 경험의 범위 역시 작가가 설계한 범주내에서 한정적으로 가능하다. 다른 공간이지만 비슷한 ‘경험의 범위 설정’이라는 맥락을 통해, 박소라 작가의 작품 공간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행위를 재현하는 장이 된다.


경험과 해석이 환류하는 예술의 공간

박소라의 이번 작품은 공간-행위-경험-해석의 환류를 작가가 설정한 구조 안에서 일부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감각과 인지를 위한 공간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행위와 경험의 범위를 설정하여 관람객에게 제공한다. 전시장에 방문한 모든 관람객은 동일한 조건의 공간을 제공받지만, 그 안에서 관람객은 각자 다른 지각과 배경을 바탕으로 상호주관적인 경험을 한다. 예술 공간에서의 경험과 해석의 환류는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2차원의 흐름이 아닌, 다른 층위로 이동하는 나선형의 3차원적 의미 체계를 이룬다. 과학기술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공간이 확장되고,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위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박소라 작가의 ‘공간’이 더 다양한 구성을 통해 실험되길 기대해 본다.





[1]  인지신경과학자인 콜린 엘러드는 그의 저서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2015)에서 신경과학과 환경 설계를 접목한 ‘심리지리학'에 대한 여러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카지노 공간에 대한 분석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카지노 입구는 곡선의 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내부 공간의 일부만 보이게 하여 사람들이 설레임과 기대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외부와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내부 공간에 재현해놓은 목가적 경관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정서를 고양시켜 카지노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2] 작가의 개인전 <Soft Prologue>(2022)에서도 디지털 공간에 대한 작가만의 재현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존재하는 게임 아이템을 현실의 공간으로 소환하여 언캐니(Uncanny)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평소 게임 세계에서 보던 매끈한 디지털 이미지와는 다른, 투박하게 흙으로 빚어낸 휴먼스케일의 조형 작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글: 이다영 /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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