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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2
작업에 관한 몇 마디

본인은 사용자 친화적인 물품이나 의복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로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 해 오고 있는 일련의 프로젝트에서는 웨어러블 디자인의 심미적, 개념적 요소를 시작으로 어떻게 우리의 신체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우리의 몸 이미지와 신체 데이터가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매개를 통해 게임 공간 혹은 메타버스 공간과 같은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초기작에서 보여준 입을 수 있는 의복 형식<Style Your Sleep (2019) >에 관한 관심은 최근작(2020-2022)에 있어 ‘디지털 공간의 의복’과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개에는 코로나를 겪으며 급격히 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빠르게 디지털화 되는 세상을 몸소 경험하며, 본질적으로 디지털 세계가 현실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작에서는 현대사회의 개인의 쉼과 휴식에 대한 고찰을 의복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탐구하고 표현하려 했다면, 최근작에서는 쉼과 휴식이 없어진 ‘피로 사회’가 형성된 이유를 자기개발과 피트니스 문화,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화 등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대표적인 근작 <Connect-Disconnect-Reconnect (2021)>는 현대 웨어러블 디자인과 온라인 게임 디자인의 심미적, 개념적 요소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입을 수 있음’과 ‘신체적 능력의 향상’이라는 요소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미소’와 ‘감정’을 트레이닝하는 상상의 헤드기어가 상정되어 제시된다. 3D 모델링, 렌더링, 3D 프린팅과 같은 일련의 프로토타이핑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조각 모델은 철제 프레임 안에 걸려 갤러리의 쇼 윈도우를 통해 전시된다. 오늘날 성형, 라이프 코칭, 자기 개발 등의 문화 안에서 사람의 몸과 정신이 계속해서 상품화 되고 개발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는 나의 시선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공상과학의 언어를 빌려 표현하고자 한 프로젝트였다.

웨어러블 디자인, 입을 수 있는 예술 형식, 신체의 디지털화에 관한 관심은 또 다른 근작 <Soft Prologue(2022)><Item Inventory(2021)>, <Dark Closet(2022)> 통해 이어진다. 온라인 게임 공간의 의상과 게임 아이템, 게임 디바이스 등의 디지털 요소를 세라믹이라는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재료로 제작하고,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템 인벤토리 공간을 실제 공간에 재구축함으로서 독특하고 언캐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하였다. 특히, ‘매우 매끈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3D 렌더링 특유의 디지털적 미감을 세라믹 3D 프린팅의 적층 방식을 이용한 기계적 표현과 러프한 수공예적 표현방식을 함께 이용하여 혼재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일련의 프로젝트들은 현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온라인 게임 아이템 사이의 개념적 유사성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현실의 플레이어는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를 직접 조작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공간으로의 신체적 확장을 가져오며, 온라인 게임 캐릭터의 의복과 아이템은 이러한 캐릭터의 신체적 역량 혹은 능력을 증진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게임 속의 의복과 오늘날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유사점을 공유한다. 정보통신기술, 로봇 공학 기술 등의 과학발전이 가져온 일상의 모습과 게임이라는 허구의(fictional) 소재를 통해서, 현재의 일상적 모습과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함께 연결하여 그리고자 했던 프로젝트이다.

본인은 90년대에 태어나 웹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시각적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서부터, 학습하는 것, 경험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내고 지속해 나가는 것 모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 왔다. 웹 공간 혹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소통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대에 나에게 이제 릴 미켈라와 같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활동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닌 일상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최근작 <Soft Touch(2022)>는 네트워크 기술 발달이 가속화된 미래 사회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디지털 게임 공간에 살며 일하고 있는 버추얼 휴먼 인플루언서 ‘김 제임스’씨를 위해 상상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디자인하고 이의 프로토타입을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서 제시한다. 작품에서 제시된 글로브는 우리가 스크린상의 인터페이스를 이용할 때 보이는 터치, 스크롤, 줌인/아웃 등의 신체적 제스처를 용이하게 하는 기능과 게임 아이템으로서의 용도를 함유하고 있다.

가상공간에 대한 미래적 상상과 디지털 공간의 의복과 인간의 외양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상황을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사회, 문화적 양상을 반영하여 그려낸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허구의 짧은 대화록과 가상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소재를 통해 완벽한 신체에 대한 관심, 유료화 서비스로 표현된 경제적 불균형, 속도감 있게 소비되고 있는 현시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풍경 등 동시대 사회가 마주한 현상과 문제를 미래의 시점으로 한 공상과학 장르의 언어를 통해 다시 비추고자 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본인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디지털 매체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3D 프린팅, CNC 등과 같은 디지털 제작방식을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으며, 라텍스 등의 특수 섬유를 이용한 의복 디자인, 세라믹과 같은 전통적 제작방식을 3D 기술을 이용해 재해석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혼합한 예술세계를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다.